당신은 왜 AI를 24시간 쓰고 싶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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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24시간 알아서 돌아가면 좋겠다”
요즘 나오는 AI들이 하나같이 같은 약속을 합니다. “당신 대신 24시간 일하는 파트너.”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회의에 들어가 있는 동안에도, AI가 알아서 이메일을 정리하고 자료를 찾고 초안을 만들어 둔다는 겁니다. 예전에는 내가 앞에 앉아 한 번씩 시켜야 했는데, 이제는 켜두면 알아서 돈다는 거죠.
솔직히 매력적입니다. 저도 그런 걸 보면 “이거 켜두면 밤사이에 일이 다 돼 있겠네” 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대부분 그럴 겁니다.
그런데 그 매력에 올라타기 전에, 한 번만 되물어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왜 AI가 24시간 돌아가길 원하는가. 이 질문은 생각보다 정직한 답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답을 들여다보면, 24시간짜리 AI가 진짜로 필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갈립니다.
1. “알아서 해줘”는 대개 “정의하기 싫어”의 다른 말입니다
“24시간 알아서 돌아가면 좋겠다”를 한 겹 벗겨보면, 그 안에 자주 들어 있는 건 이겁니다. “내가 일을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아도, AI가 알아서 판단해서 해줬으면.”
이 마음이 게으른 건 아닙니다. 사람한테 일을 넘길 때도 우리는 이렇게 하니까요. “김 대리, 이거 알아서 좀 정리해줘.” 그러면 김 대리는 눈치로 빈칸을 메웁니다. 어떤 톤으로, 어디까지, 누구한테 보여줄 건지를 굳이 말 안 해도 대충 맞춰옵니다. 우리는 그 ‘눈치’에 오래 기대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AI에게 일을 시키려면 먼저 일을 정의해야 한다에서 짚었듯이, AI에겐 그 눈치가 없습니다. “알아서 정리해줘”라고 하면 AI는 빈칸을 ‘가장 흔한 값’으로 채웁니다. 한 번 시킬 때는 결과를 보고 “아 이게 아니지” 하며 다시 시키면 됩니다. 그렇게 대화를 몇 번 주고받으며 내가 원하는 걸 좁혀가죠.
24시간 자율은 바로 그 되물어보고 고쳐주는 사람이 없는 상태입니다. 내가 잠든 사이에 AI는 빈칸을 자기 방식대로 채우고, 그 채운 걸 전제로 다음 일을 하고, 또 그 위에 다음 일을 쌓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결과물은 잔뜩 있는데, 그게 내가 원한 방향인지는 아무도 중간에 봐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알아서 24시간”을 원하는 마음의 절반은, 정의하는 수고를 건너뛰고 싶다는 겁니다. 문제는, 바로 그 건너뛴 자리에서 사고가 납니다.
2. 24시간은 정의를 덜 요구하지 않습니다 — 더 요구합니다
여기가 이 글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한 달 전에 ‘일을 정의하라’고 썼을 때, 그건 한 번의 요청을 정의하는 얘기였습니다. “보고서 써줘”가 아니라 “누구한테, 왜, 어떤 기준으로, 어디까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였죠. 한 번 시키고 결과를 받는 구조에서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잘못 나오면 다시 시키면 되니까요.
그런데 24시간 자율은 구조가 다릅니다. 여기서 정의해야 하는 건 한 번의 작업 내용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판단의 기준입니다.
- 어디까지는 알아서 하고, 어디서부터는 멈춰서 나한테 물어야 하는가
- 무엇을 ‘다 된 것’으로 보고 다음으로 넘어가도 되는가
- 중간에 애매한 상황이 오면 보수적으로 굴어야 하나, 밀어붙여야 하나
- 어떤 일은 절대 손대면 안 되는가
한 번 시키는 AI한테는 이런 걸 말 안 해도 됩니다. 내가 옆에서 매번 판단하니까요. 그런데 24시간 돌아가는 AI한테는 이 판단 기준을 미리 다 정의해서 쥐여줘야 합니다. 내가 그 자리에 없을 거니까요. 즉 정의의 대상이 ‘작업 내용’에서 ‘자율의 경계’로 한 층 올라갑니다. 이건 덜 정의하는 게 아니라, 더 어렵고 더 많이 정의하는 일입니다.
이건 새로운 얘기가 아니라 원래 있던 원칙의 극단입니다. 검증할 수 있는 만큼만 맡길 수 있고, 되돌릴 수 있는 만큼만 맡길 수 있습니다. 24시간 자율은 이 두 한계선을 정면으로 시험합니다. 내가 검증하지 못하는 속도로 일이 쌓이고, 내가 손대기 전에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지점까지 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자율의 폭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검증과 되돌림의 폭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 폭을 정하는 게 바로 ‘자율의 경계를 정의하는’ 일입니다.
3. 정의 안 하고 24시간 돌리면, 부호가 24배가 됩니다
왜 이게 그냥 “결과가 조금 부실하다” 수준이 아니라 사고인지, 숫자로 보면 분명합니다.
AI는 마법이 아니라 증폭기입니다. 증폭기는 넣은 것을 키웁니다. 좋은 걸 넣으면 좋은 걸 키우고, 어긋난 걸 넣으면 어긋난 걸 키웁니다. 부호를 바꿔주지는 않아요. 24시간 자율은 이 증폭기를 24배로 틀어놓는 일입니다.
정의가 잘 된 일을 24시간 돌리면, 방향이 맞는 결과가 밤새 쌓입니다. 이건 정말 강력합니다. 이게 24시간 AI를 켜는 진짜 이유죠.
반대로 정의가 안 된 일을 24시간 돌리면, 살짝 어긋난 결과가 24번 쌓입니다. 매 사이클마다 AI는 빈칸을 자기 값으로 채우고, 그 어긋남을 전제로 다음을 만들고, 그 위에 또 쌓습니다. 아침에 받아보는 건 ‘그럴듯해 보이지만 방향이 조금씩 다 틀어진 산출물 더미’입니다.
이걸 요즘은 ‘워크슬롭(workslop)‘이라고 부릅니다. 겉은 매끈한데 알맹이가 없어서, 받은 사람이 오히려 시간을 더 쓰게 만드는 AI 산출물이죠. 한 조사에서는 이런 걸 하나 받을 때마다 정리하는 데 평균 두 시간 가까이 걸린다고 나왔습니다. 혼자 쓸 때도 문제지만, 이걸 정의 없이 24시간 찍어내서 팀에 흘려보내면, 그 청구서는 받는 동료에게 날아갑니다. 내가 아낀 정의의 수고가 사라진 게 아니라, 하류로 옮겨가 24배로 불어난 겁니다.
전에 “AI를 도입했는데 왜 더 빨라지지 않느냐”를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AI가 빠르게 해준 건 실행 한 칸이고, 정의와 검증은 여전히 사람 몫이라 전체는 안 빨라진다는 얘기였죠. 24시간 자율은 그 ‘실행 한 칸’만 극단으로 키운 겁니다. 정의를 그대로 둔 채 실행만 24배 키우면, 빨라지는 게 아니라 치울 게 24배가 됩니다.
4. 그 욕망을 신호로 읽으세요
그렇다고 “24시간 AI 같은 거 켜지 마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이 일을 AI가 24시간 알아서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 있다면, 그 마음을 그냥 흘리지 말고 신호로 읽어보세요. 그건 대개 이런 뜻입니다. “이 일은 반복적이고, 규칙이 있고, 내가 매번 붙어 있지 않아도 될 만큼 정형화돼 있다.” 다시 말해, 그 일은 지금 정의해 둘 가치가 가장 높은 일입니다.
그러니 순서를 이렇게 바꿔봅니다. 24시간 켜두고 싶은 그 일을 발견했다면, 켜기 전에 먼저 앉아서 그 일을 정의합니다. 무엇을 어디까지, 어떤 기준으로, 어디서 멈춰 물어야 하는지를요. 그 정의를 한 번 글로 만들어 두면, 그건 한 번 만들면 남는 자산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잘 정의된 일이야말로, 24시간 돌렸을 때 진짜로 성과가 쌓이는 일입니다.
핵심은 순서입니다. 정의가 먼저고, 24시간은 그 다음입니다. 정의 없이 24시간부터 켜는 건 증폭기를 부호도 안 정하고 최대로 올리는 일이에요. 정의를 해두고 24시간을 켜는 건, 잘 맞춘 일을 밤새 불려두는 일이고요. 같은 도구인데 순서 하나로 결과의 부호가 갈립니다.
마무리 — 24시간을 켜기 전에, 한 문장
24시간 대신 일해주는 AI는 앞으로 더 흔해질 겁니다. 이건 막을 수도 없고 막을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그걸 켤 때, 도구의 성능을 묻기 전에 나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이 AI에게, 내가 없는 24시간 동안 지킬 기준을 건네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으면, 24시간은 당신의 가장 강력한 지렛대가 됩니다. 답하지 못하면, 24시간은 아침마다 치워야 할 더미를 만드는 기계가 되고요. 그리고 그 답은 도구가 아니라, 내가 내 일을 얼마나 정의해 뒀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 바뀐 건 도구인데, 다시 돌아오는 질문은 늘 같습니다. 당신은 그 일을, 당신 없이도 굴러가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