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목록

"그 얘기는 안 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게 오늘의 화제가 됩니다

  • 일하는방식
  • 프롬프트
  • AI활용
  • 커뮤니케이션
  • 의사결정

들어가며 — 안심시키려고 넣은 한 줄

어느 교육 자료를 만들면서, 앞쪽에 한 줄을 넣어 뒀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다루지 않을 것을 미리 밝히는 문장이었습니다. 민감할 수 있는 영역이 하나 있었고, “그건 안 건드립니다”라고 먼저 말해 두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거든요.

고객사 검토 의견이 왔습니다. 그 줄을 빼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조금 의외였습니다. 안 하겠다는 약속인데 왜 빼라는 걸까요. 그런데 잠깐 생각하니 바로 납득이 됐고, 저는 거기서 한 걸음 더 갔습니다. 구두로도 그 얘기를 꺼내지 않겠다고 회신했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 얘기는 안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그 얘기를 오늘의 화제로 올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키는 것과 지킨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행동입니다. 그리고 후자는 종종 전자를 무너뜨립니다.


1. 금지는 화제를 지우지 않습니다

지우려고 적은 글자도, 적힌 글자다 왼쪽은 "저희는 A를 다루지 않습니다"라고 미리 밝힌 경우입니다. 듣는 쪽의 화제 목록에 본 주제 두 개와 함께 A가 새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질문 세 개 중 두 개가 A로 향합니다. 오른쪽은 A를 아예 꺼내지 않은 경우입니다. 화제 목록에는 본 주제 세 개만 있고, 질문도 본 주제로 갑니다. 금지 문장은 화제를 지우지 않습니다. 화제를 하나 만듭니다. "저희는 A를 다루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면 밝힌 경우 "A 얘기는 오늘 하지 않습니다" 듣는 쪽의 화제 목록 본 주제 ① 본 주제 ② A (다루지 않는다고 말한 것) 쉬는 시간에 오는 질문 셋 중 둘이 A로 옵니다 지우려던 것이 오늘의 화제가 됩니다 꺼내지 않은 경우 (A에 대한 언급 없음) 듣는 쪽의 화제 목록 본 주제 ① 본 주제 ② 본 주제 ③ 쉬는 시간에 오는 질문 셋 다 본 주제로 갑니다 A는 애초에 목록에 없습니다 금지는 화제를 지우지 않습니다. 화제를 하나 만듭니다.
"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안 하겠다는 약속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오늘의 목록에 올리는 행위입니다.

말하기 전, 듣는 사람의 머릿속에 그 주제는 없었습니다. 말하고 나면 있습니다. 심지어 “안 다룬다”는 꼬리표가 붙어서, 다른 주제들보다 눈에 더 잘 띄는 상태로요.

그래서 쉬는 시간에 오는 질문이 그쪽으로 옵니다. 강사가 안 다루겠다고 한 그것이 오늘 가장 궁금한 것이 되어 있으니까요.

이건 사람들이 삐딱해서가 아닙니다. 문장의 구조가 그렇습니다. 부정문은 대상을 먼저 불러온 다음에 지웁니다. “분홍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를 들으면 순서상 코끼리가 먼저 옵니다. 지우는 건 그 다음이고, 대개 잘 안 지워집니다.


2. 같은 문장이 회의 첫머리에도 있습니다

이 구조는 강의실보다 회의실에 더 많습니다. 익숙한 문장들일 겁니다.

  • “오늘은 책임 소재를 따지는 자리가 아닙니다.” → 방 전체가 책임 소재를 생각합니다.
  • “이건 구조조정과 무관한 조사입니다.” → 그 조사는 이제 구조조정 조사가 됩니다.
  • “미리 말씀드리지만 예산 얘기는 아닙니다.” → 첫 질문이 예산으로 옵니다.

셋 다 선의로 넣은 문장입니다. 상대를 안심시키려고요. 그런데 안심시키려면 불안의 이름을 먼저 불러야 하고, 그 순간 이미 늦습니다.

대안은 침묵이 아니라 대체입니다. 없앨 것을 말하는 대신 있을 것을 말하는 겁니다.

안심시키려던 문장대신 쓸 문장
”책임 소재를 따지는 자리가 아닙니다""오늘 결론은 다음 조치 세 개를 정하는 것까지입니다"
"구조조정과 무관합니다""이 조사의 결과는 업무 배분 개선안으로만 씁니다"
"예산 얘기는 아닙니다""오늘은 우선순위만 정하고, 예산은 다음 회차에서 봅니다”

오른쪽 문장들은 같은 안심을 주면서 금지어를 안 꺼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좋은 게 있습니다. 왼쪽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기 쉬운데(누군가 물으면 결국 다루게 됩니다), 오른쪽은 범위를 정한 진술이라 그대로 지켜집니다.


3. AI에게 주는 지시도 똑같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실무에 더 자주 걸립니다. 프롬프트에 이런 줄, 한 번쯤 쓰셨을 겁니다.

- 과장된 표현은 쓰지 마
- 표는 만들지 마
- 추측해서 채우지 마

그리고 결과를 보면 그중 하나쯤은 지켜지지 않습니다. 저는 이걸 오래 “모델이 지시를 잘 못 따른다”로 읽었는데, 지금은 다르게 봅니다. 금지형은 지시로서 약합니다.

이유는 사람에게 통하는 것과 같습니다. “표를 만들지 마”라는 문장은 그 요청의 맥락에 표라는 개념을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정작 무엇을 하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지 말 것 세 줄을 읽고 나서도 AI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안 정해져 있는 거죠. 빈칸이 남으면 AI는 되묻지 않고 스스로 채웁니다.

그래서 바꿔 쓰면 대개 바로 잡힙니다.

금지형대체형
”과장된 표현은 쓰지 마""형용사를 빼고 사실과 숫자로만 써"
"표는 만들지 마""줄글 세 문단으로 써"
"추측해서 채우지 마""자료에 없는 항목은 ‘자료 없음’이라고 적어”

오른쪽이 더 잘 먹히는 건 문장이 정중해서가 아니라 검사할 수 있는 형태라서입니다. “과장하지 마”는 지켰는지 판정할 수 없지만, “형용사를 빼라”는 읽어보면 압니다. 모델 제공사들의 프롬프트 안내가 공통적으로 “하지 말 것 대신 할 것을 적으라”고 권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금지는 상대(사람이든 AI든)에게 빈칸과 화제를 동시에 줍니다. 대체 지시는 빈칸을 없애고 화제도 안 만듭니다.


4. 그럼 “하지 마세요”는 어디에 두나

여기서 오해가 생길 수 있어서 절단선을 하나 긋겠습니다.

저는 이 블로그에서 확정 문서에는 「하지 마세요」가 없습니다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승인된 최종본에는 “무엇을 하기로 했는가”만 남고, “무엇을 하지 말라고 했는가”는 지저분한 협상 기록에만 남는다고요. 그래서 금지 사항을 찾아내 복원하라는 게 그 글의 결론이었습니다.

오늘 글은 정반대로 들릴 수 있는데, 사실은 두 글이 한 쌍입니다. 자리를 나누면 바로 정리됩니다.

  • 금지는 「내가 알고 있어야 할 정보」입니다. → 반드시 찾아내서 내 손에 쥡니다.
  • 금지는 「상대에게 던지는 문장」이 아닙니다. → 나갈 때는 대체 지시의 형태로 바꿉니다.

그러니까 금지는 입력 쪽에 두고 출력 쪽에서 뺍니다. 저 교육 건에서 제가 한 게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 다루지 않을 영역은 제 머릿속과 준비 자료에 분명히 있었고, 지금도 그대로 지킵니다. 다만 그 사실을 화면과 입에서 뺐을 뿐입니다.


5. 오늘 바로 확인해 볼 세 자리

첫째, 발표 자료의 도입부. “오늘 다루지 않는 것” 슬라이드가 있다면 한번 보십시오. 그 슬라이드가 진짜 하는 일은 범위를 좁히는 게 아니라, 안 다룰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룰 것만 적어도 범위는 똑같이 좁혀집니다.

둘째, 회의를 여는 첫 문장.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로 시작한다면, “오늘 나갈 결론은 ~까지입니다”로 바꿔 보십시오. 같은 말인데 방 안의 공기가 달라집니다.

셋째, 자주 쓰는 프롬프트의 금지 줄. “~하지 마”가 세 줄 이상이면, 그걸 “대신 이렇게 해”로 바꿔 쓰는 것만으로 결과가 바뀝니다. 줄 수가 줄어들기도 합니다. 금지는 여러 개가 필요하지만 대체 지시는 하나면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마무리

지키는 것과 지킨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그리고 상대에게 남는 건 대개 말한 쪽입니다. 지킨 것은 아무 흔적이 없고, 지키겠다고 말한 문장만 기억에 남으니까요. 지우려고 적은 글자도, 결국 적힌 글자입니다.

무료 이북 표지. 제목 「도구는 갈아타는 것이고, 실력은 실려 가는 것입니다」, 데이터임팩트 박상훈, 무료 배포판 v1.0.
데스크톱판 52쪽 · 모바일판 101쪽

무료 이북

도구는 갈아타는 것이고, 실력은 실려 가는 것입니다

데이터임팩트 박상훈

AI 글은 많이 읽었는데 여전히 뭘 어떤 순서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10년, 130여 건의 기업 교육 현장에서 정리한 순서 한 장을 담았습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도구가 바뀌어도 안 바뀌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오늘 붙일 한 줄까지.

노트북용 데스크톱판과 휴대폰에서 확대 없이 읽히는 모바일판을 함께 보내드립니다. 화면 열람용이라 인쇄는 제한되어 있습니다.

입력하신 이름과 이메일 주소는 받으시는 PDF 모든 페이지 하단에 작게 표시됩니다. 무단 재배포를 억제하기 위한 표기입니다. 두 정보는 이북 전달과 데이터·AI 활용에 관한 후속 콘텐츠 발송에 사용하며, 언제든 수신 거부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