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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어제 고친 것이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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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파일이 가벼워졌습니다

같은 자료를 몇 번 고쳐 만들던 중이었습니다. 내용이 하나 추가돼서, 만들어 두는 스크립트를 다시 돌렸습니다. 늘 하던 일입니다.

그런데 만들어진 파일이 이상했습니다. 내용을 더 넣었는데 파일이 작아져 있었습니다. 60KB짜리가 45KB로요.

열어 봤습니다. 정상적으로 열립니다. 서식도 멀쩡하고, 깨진 글자도 없고, 스크립트는 에러 하나 없이 끝났습니다.

목차를 세어 보니 한 항목이 통째로 없었습니다. 전날 제가 따로 넣어 둔 부분이었습니다.


1. AI에게 만들게 하는 순간, 원본의 자리가 옮겨갑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간단합니다. 그 부분은 결과물에만 있었고, 만드는 쪽에는 없었습니다.

전날 저는 완성된 파일을 열어서 그 내용을 직접 넣었습니다. 만드는 절차에는 손대지 않았고요. 그래서 다음 날 다시 만들었을 때, 만드는 절차는 그 내용을 모르는 채로 처음부터 다시 그렸습니다.

여기서 짚고 싶은 건 제 실수담이 아닙니다. 이게 AI로 일하기 시작하면 구조적으로 새로 생기는 자리라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파일이 곧 원본이었습니다. 보고서를 워드로 쓰면 그 워드 파일이 원본이고, 고치면 고쳐진 그 파일이 최신입니다. 원본이 하나뿐이라 헷갈릴 일도 없었습니다.

AI에게 만들라고 시키는 순간 이게 갈라집니다.

  • 만드는 쪽 — 프롬프트, 지시서, 참고 자료, 대화 스레드, 스크립트. 다시 만들 때 읽히는 것.
  • 나오는 쪽 — 문서, 표, 슬라이드, 보고서 파일. 손에 쥐고 보는 것.

원본은 조용히 앞쪽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손은 여전히 뒤쪽을 고칩니다. 눈에 보이는 게 그쪽이니까요. 화면에 열려 있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 문장이 보이는 것도 결과물입니다.

전에 잘 됐던 명령은 흘려보내지 말고 쌓아 두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은 지금도 유효한데, 오늘 글은 그 습관이 자리를 잡은 다음에 청구되는 비용입니다. 명령을 쌓아 두면 같은 자료를 다시 만들 수 있게 되고, 다시 만들 수 있게 된 순간부터 결과물에 손대는 습관이 위험해집니다.


2. 하필, 사라지는 것이 제일 값진 부분입니다

이게 단순한 부주의로 안 끝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결과물을 손으로 고치는 건 대개 AI가 못 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시서에 안 적혀 있던 것, 그날 알게 된 사실, 내 판단이 들어간 문장, 어제 상대가 던진 요청. 그러니까 그 자료에서 가장 사람 손이 많이 간 부분입니다.

AI가 시키는 대로 잘 만들어 준 부분은 다시 만들어도 똑같이 나옵니다. 안 나오는 건 정확히, 제가 넣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고는 손해가 균등하지 않습니다. 90%는 그대로 복원되고, 날아가는 10%가 그 자료에서 제일 비싼 10%입니다.

한 가지 더. 이건 무엇을 다시 만들어야 하는지 정하는 일과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글은 범위를 덜 잡아서 나는 사고였습니다. 오늘 건은 범위를 제대로 잡고, 시킨 대로 정확히 다시 만들어졌는데도 나는 사고입니다. 잘못 시킨 게 아니라 잘 시켰는데 나는 쪽이죠.

AI는 시킨 대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다만 “다시”의 기준점이 제 손이 닿기 전이었습니다.


3. 그리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이 사고의 진짜 성질은 여기 있습니다. 없어졌다는 신호가 어디에도 안 뜹니다.

  • 스크립트는 정상 종료했습니다. 에러도 경고도 없습니다.
  • 파일은 열립니다. 서식도 정상이고 깨진 데도 없습니다.
  • 남아 있는 내용은 전부 맞습니다. 틀린 게 하나도 없습니다.

없어진 것은 없어졌다는 표시를 남기지 않습니다. 틀린 문장은 읽으면 걸리지만, 빠진 문단은 읽어도 안 걸립니다.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그걸 넣은 사람뿐이고, 그 사람은 이미 넣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지간한 점검에는 전부 통과합니다. 선 그어 둘 자리가 여기입니다.

하나 — 검사기로 안 잡힙니다. 주의가 아니라 장치로 막으라는 처방은 여기서 반만 듣습니다. 검사기는 있는 것이 규칙에 맞는지를 봅니다. 이건 있는 게 전부 맞습니다. 없는 것을 검사하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 목록이 따로 있어야 하는데, 그 목록이 없어서 생긴 사고니까요.

둘 — 부수효과 감시로도 안 잡힙니다. 전에 AI가 시킨 일이 아니라 딸려온 일에서 사고가 난다고 썼습니다. 그건 제가 안 시킨 동작이 뭔가를 날린 경우입니다. 오늘 건은 반대입니다. 재생성은 제가 시킨 일이고, 정확히 그 일만 했습니다. 감시 목록에 올릴 수도 없습니다. 정상 동작이니까요.

셋 — 같은 명령을 저장해 뒀어도 안 막힙니다. 얼마 전에 같은 명령을 다시 줘도 같은 작업이 되지는 않는다고 썼습니다. 말로 준 규칙은 줄 때마다 다시 해석돼서 결과가 조금씩 달라진다는 이야기였죠. 오늘은 정반대 자리입니다. 다시 만들면 정확히 똑같이 나옵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똑같이 나온다는 건 그 사이에 제가 한 일이 없던 일이 된다는 뜻이니까요. 재현이 잘될수록 손질은 더 확실히 지워집니다.

손질은 결과물에만 남고, 다시 만들 때 읽히는 것은 지시서뿐입니다 위아래 두 줄이 있습니다. 위는 AI에게 준 지시서이고, 아래는 손에 쥐는 결과물입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간이 흐릅니다. 첫째 칸에서 지시서를 주면 AI가 결과물을 만들어 줍니다. 결과물은 세 덩어리로 되어 있습니다. 둘째 칸에서 사람이 결과물을 열어 한 덩어리를 손으로 더 넣습니다. 금색으로 표시된 부분입니다. 이때 그 손질이 지시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그 화살표는 끊겨 있습니다. 지시서는 첫째 칸의 모습 그대로 남습니다. 셋째 칸에서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하면 AI는 지시서를 읽습니다. 지시서에 손질이 없으니 결과물에도 없습니다. 금색 자리는 빈칸으로 돌아옵니다. 에러도 경고도 없고 파일은 정상적으로 열립니다. 줄어든 것은 분량뿐입니다. 결론은 손으로 고친 자리는 다음 재생성까지만 산다는 것입니다. 같은 자료를 두 번 만들 때 — 무엇이 읽히고 무엇이 안 읽히나 ① 처음 — AI가 만들어 줍니다 ② 그다음 — 내가 손으로 고칩니다 ③ 나중에 — 다시 만들어 달라고 지시서 — 다시 만들 때 읽는 것 지시서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 지시서 — 그대로 아무것도 안 바뀌었습니다 지시서 — 그대로 AI가 읽는 건 이것뿐 생성 ✕ 안 올라갑니다 재생성 결과물 — 손에 쥐는 것 받은 그대로 내가 넣은 한 덩어리 여기에만 있습니다 빈칸으로 돌아옴 에러 없음 · 파일 정상 손으로 고친 자리는, 다음 재생성까지만 삽니다.
끊긴 화살표는 ② 하나뿐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정상 동작입니다.

며칠 전에는 사고는 바꾼 것이 아니라 안 바꾼 것에서 난다고 썼습니다. 오늘은 방향이 반대입니다. 바꾼 것이 사라집니다. 원인은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무엇이 어디에 들어 있는지가 어디에도 안 적혀 있다는 것.


4. 처방은 세 개고, 셋 다 코드와 상관없습니다

하나. 이 자료가 어느 쪽인지 먼저 정합니다.

자료는 두 종류입니다. 한 번 만들고 끝나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다시 만들 것. 앞엣것은 결과물을 마음껏 고쳐도 됩니다. 다시 만들 일이 없으니 손질이 사라질 일도 없습니다.

위험한 건 그 중간에 걸쳐 있는 자료입니다. 처음엔 한 번만 만들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매달 돌리고 있는 것들이요. 그리고 대개 중요한 자료가 여기 있습니다. 월간 보고서, 정기 점검표, 계속 고쳐 쓰는 제안서 양식 같은 것들.

이 자료가 다시 만들 물건이면, 결과물은 읽기 전용으로 취급합니다. 고칠 게 생기면 결과물이 아니라 지시서를 고치고 다시 뽑습니다. 한 번은 번거롭고 두 번째부터는 이게 더 빠릅니다.

둘. 그래도 손댔으면, 그 자리에서 위로 올립니다.

현실적으로는 결과물을 고치게 됩니다. 급하니까요. 그럴 때 문장 하나면 됩니다.

“방금 제가 파일에서 고친 이 부분, 다음에 다시 만들 때도 들어가게 지시서에 반영해 주세요.”

핵심은 그 자리에서입니다. 나중에 하겠다고 미루면 안 합니다. 그리고 안 한 상태로 흘러가는 며칠 동안, 그 파일은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음 재생성이 오기 전까지는요.

셋. 다시 만든 다음엔 내용 말고 부피부터 봅니다.

이번에 사고를 잡은 건 내용을 대조해서가 아닙니다. 파일 크기가 줄어서였습니다. 그거 하나였습니다.

쪽수, 파일 크기, 목차 항목 수, 표의 행 수. 뭐든 하나면 됩니다. 이전 것과 나란히 놓고 30초만 보세요. 늘었으면 대체로 괜찮고, 줄었으면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설명되는 이유가 안 나오면 뭔가 빠진 겁니다.

내용을 전부 검증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건 못 합니다. 부피는 코드를 몰라도, 그 자료를 안 만들어 본 사람도 잽니다.


5. 한 겹 더 — 만드는 쪽도 여러 벌일 수 있습니다

이 건에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라진 부분을 되살리려고 만드는 쪽을 열어 봤더니, 그 스크립트가 두 벌 있었습니다. 작업 폴더에 18KB짜리, 임시 폴더에 21KB짜리. 그리고 임시 폴더에 있는 쪽이 최신이었습니다.

전날 스크립트를 고쳐 놓고 원래 자리에 옮기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사라진 내용은 실은 완전히 죽지 않았고, 임시 폴더 쪽에는 살아 있었습니다.

이 대목이 오히려 본론에 가깝습니다. 같은 사고가 한 층 위에서 또 납니다. 결과물이 만드는 쪽보다 최신이면 재생성이 날리고, 만드는 쪽이 여러 벌이면 어느 것으로 다시 만드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AI에게 일을 맡길수록 파일은 늘어납니다. 시안, 임시본, 백업, 대화에 붙였던 사본. 그중 어느 것이 진짜인지 정하는 일은 늘어난 만큼 무거워지고, 그건 AI가 대신 못 합니다. AI는 제가 건네준 것을 읽을 뿐이고, 건네지 않은 것은 없는 것이니까요.


마무리 — 다음에 다시 만들면, 지금 고친 게 남아 있나요

AI로 일하는 방식이 자리를 잡으면 순서가 이렇게 바뀝니다. 문서를 쓰는 게 아니라 문서를 만들게 하고, 마음에 안 드는 데를 고치고, 나중에 또 만들게 합니다.

이 순서에서 사람이 놓치는 칸은 늘 같은 자리입니다. 고친 것을 어디에 고쳤느냐. 화면에 보이는 곳을 고쳤는지, 다음에 읽힐 곳을 고쳤는지.

이건 AI 성능 얘기가 아닙니다. 모델이 열 배 좋아져도 제가 파일에서 직접 고친 문단은 지시서에 안 생깁니다. 오히려 AI가 더 잘 만들어 줄수록 다시 만드는 일이 잦아지고, 잦아진 만큼 손질이 지워지는 횟수도 늘어납니다.

그래서 AI에게 뭔가를 만들게 하고 그걸 손으로 고쳤다면, 저장하기 전에 한 번만 되물으면 됩니다.

이거, 다음에 다시 만들면 지금 고친 게 남아 있나요?

답이 “아니오”인데 그냥 저장했다면, 지금 손에 든 그 파일은 완성본이 아니라 다음 재생성까지만 유효한 임시본입니다.

무료 이북 표지. 제목 「도구는 갈아타는 것이고, 실력은 실려 가는 것입니다」, 데이터임팩트 박상훈, 무료 배포판 v1.0.
데스크톱판 52쪽 · 모바일판 101쪽

무료 이북

도구는 갈아타는 것이고, 실력은 실려 가는 것입니다

데이터임팩트 박상훈

AI 글은 많이 읽었는데 여전히 뭘 어떤 순서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10년, 130여 건의 기업 교육 현장에서 정리한 순서 한 장을 담았습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도구가 바뀌어도 안 바뀌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오늘 붙일 한 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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