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다운만 쌓으면, 그냥 폴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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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지식을 마크다운으로, 로컬에 쌓으라고 적었습니다. AI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자기 지식을 모아 두라는 이야기였죠. 그런데 그 글을 읽고 옵시디언을 깐 분들이 한 달쯤 뒤에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노트는 쌓이는데, 다시 안 찾게 돼요.”
당연합니다. 쌓기만 하면 그건 옵시디언이 아니라 그냥 폴더니까요.
저장은 쉽고, 다시 찾기는 어렵습니다
지식 관리 도구를 처음 쓸 때 누구나 같은 함정에 빠집니다. 좋은 글을 읽으면 클리핑하고, 회의가 끝나면 메모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적어 둡니다. 한 달이면 노트가 수백 개입니다. 뿌듯합니다. “제2의 뇌”를 만들고 있는 기분이 들죠.
그런데 정작 필요한 순간, 그 노트를 다시 꺼내지 못합니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고, 어느 폴더에 넣었는지 모르고, 비슷한 메모가 세 개나 흩어져 있습니다. 저장은 했지만 연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폴더에 쌓인 마크다운은 검색은 되지만, 그 지식이 무엇과 관련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본인조차도요.
이것이 수많은 “제2의 뇌” 프로젝트가 결국 디지털 쓰레기장으로 끝나는 이유입니다. 도구가 나빠서가 아니라, 쌓기만 하고 연결하지 않아서입니다.
연결하는 행위가 곧 생각입니다
옵시디언에서 노트 하나를 적고 다른 노트로 [[위키링크]]를 거는 순간, 작은 질문 하나가 강제됩니다. “이건 내가 아는 무엇과 관련되는가?”
이 질문이 핵심입니다. 링크를 걸려면 기존 지식을 떠올려야 하고, 떠올리려면 “이 둘이 왜 연결되는가”를 한 번 생각해야 합니다. 연결은 저장의 부산물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사고 행위입니다. 노트를 100개 쌓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100개를 연결하는 동안에는 반드시 생각이 일어납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평생 한 가지 방법으로 일했습니다. 메모 한 장을 적을 때마다 기존 메모와 연결될 자리를 찾아 끼워 넣었습니다. 단순한 정리법처럼 보이지만, 그는 이 연결된 메모 상자(체텔카스텐)를 두고 “나의 대화 상대”라고 불렀습니다. 약 9만 장의 메모가 그저 쌓인 게 아니라, 메모끼리 대화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가 평생 남긴 70여 권의 저작은 그 대화의 출력물이었습니다.
그래프는 혼자서는 안 보이던 것을 보여 줍니다
연결이 쌓이면 옵시디언의 그래프 뷰에 변화가 나타납니다. 처음엔 점들이 흩어져 있다가, 어느 순간 특정 노트로 링크가 몰리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당신이 계속 되돌아가는 주제가 그래프 위에 허브로 떠오르는 겁니다.
이건 폴더 구조로는 절대 보이지 않습니다. 폴더는 내가 미리 정한 분류일 뿐이지만, 그래프는 내 사고의 실제 모양입니다. “나는 의사결정에 관심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매번 ‘설득’으로 끝나는 메모를 쓰고 있었구나” — 이런 발견은 노트를 연결해 둔 사람에게만 찾아옵니다. 단독 메모로는 안 보이던 패턴이, 연결되었을 때 비로소 보입니다.
AI에게도, 한 장보다 연결된 묶음입니다
여기서 지난 글의 AI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AI에게 노트 한 장을 건네는 것과, 그 노트에 연결된 주변 노트까지 함께 건네는 것은 결과의 깊이가 완전히 다릅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A 방식을 썼다”는 노트 한 장만 건네면 AI는 사실 하나를 압니다. 하지만 그 노트가 “보안 정책 때문에”, “이전 프로젝트의 실패 때문에”, “이 팀의 역량 때문에”라는 노트들과 연결되어 있다면, AI는 사실이 아니라 판단의 맥락을 건네받습니다. 지난 글에서 RAG가 문서를 잘게 쪼개면서 끊어 버린다고 했던 게 바로 이 연결입니다. 옵시디언의 위키링크는 그 연결을, 사람이 직접 의미 있게 만들어 둔 것입니다.
증폭기에 좋은 신호를 넣으려면, 신호가 맥락과 함께 와야 합니다. 연결되지 않은 노트 한 장은, 맥락이 잘린 신호입니다.
쌓지 말고, 연결하십시오
옵시디언을 깔았다면, 이제 노트를 늘리는 데 집중하지 마십시오. 오늘 적은 노트가 어제 적은 어떤 노트와 연결되는지를 찾으십시오. 한 주에 한 번이라도, 흩어진 메모를 열어 “이건 무엇과 이어지는가”를 묻는 시간을 가지는 편이, 노트를 열 개 더 쌓는 것보다 낫습니다.
지식은 양으로 쌓이지 않습니다. 연결로 자랍니다. 그리고 이것도 결국,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