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잘 쓰는 사람은 같은 명령을 매번 새로 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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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어제 잘 됐던 그 명령, 오늘 어디에 있나요
어제 한참을 다듬어서 드디어 마음에 드는 결과를 뽑아낸 프롬프트가 있습니다. 회의록을 원하는 형식으로 딱 정리해 주거나, 보고서 톤을 적당히 고쳐 주던 그 명령이요. 그런데 오늘 같은 일을 또 하면서, 혹시 처음부터 다시 치고 있지 않으신가요.
많은 분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AI를 잘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갈립니다. 차이는 머리가 좋고 나쁨이 아니라, 어제 잘 됐던 명령이 오늘 어디에 있느냐입니다.
1. AI는 어제의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먼저 분명히 해 둘 게 있습니다. AI는 어제 우리가 나눈 대화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새 창을 열면 다시 백지에서 시작하고, 지난번에 우리가 어떤 표현으로 시켜서 좋은 결과가 나왔는지 전혀 알지 못해요. 이건 이 블로그에서 AI는 기억하지 않는다고 짚었던 그대로입니다.
그러니 기억하는 일은 AI가 아니라 사람의 몫으로 남습니다. 잘 됐던 명령이 어딘가에 남아 있지 않으면, 그건 그 순간 한 번 쓰고 증발해 버립니다. 다음에 같은 일이 와도 우리는 또 기억을 더듬어 처음부터 문장을 짓고 있는 거죠. 매번 0에서 다시 출발하는 겁니다.
2. 그래서 잘 쓰는 사람은 명령을 ‘밖에’ 둡니다
AI가 기억하지 못한다면, 답은 단순합니다 — 잘 됐던 명령을 내가 기억해 두면 됩니다. 더 정확히는, 머릿속이 아니라 밖에 적어 두는 것이죠.
이 블로그에서 여러 번, 지식은 AI가 읽을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고 했고 그 지식은 쌓는 게 아니라 연결로 자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원리가 지식만이 아니라 명령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자주 하는 작업 — 회의록 정리, 보고서 톤 맞추기, 자료 요약, 데이터 표 다듬기 — 의 잘 된 명령을 노트 한 곳에 모아 두고, 다음엔 그걸 꺼내 조금만 고쳐 쓰는 겁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작은 차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크게 벌어집니다.
매번 새로 치는 사람은 작업이 끝날 때마다 명령이 사라지고, 다음 일은 또 바닥에서 시작합니다. 반면 명령을 쌓아 두는 사람은 일이 끝날 때마다 출발점이 한 칸씩 높아져요. 같은 일을 두 번째 할 때 첫 번째보다 빨라지고, 세 번째엔 더 빨라집니다. 매번 새로 치기에서, 한 번 만들어 재사용하기로. 이게 AI 활용능력 사다리에서 가장 윗칸에 있던, ‘구조를 만들어 맡기는’ 자리입니다.
3. 도구들이 지금, 사람이 손으로 하던 그 일을 자동화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요즘 쏟아지는 ‘AI 에이전트’ 도구들이 정확히 이 습관을 도구 안에 집어넣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한 오픈소스 에이전트는 어려운 문제를 한 번 풀고 나면 그 해법을 재사용 가능한 메모로 스스로 적어 두고, 다음에 비슷한 일이 오면 그걸 꺼내 더 빨리 처리합니다. 또 다른 연구용 에이전트는 한 번의 결과와 그에 대한 피드백을 다음 시도에 반영하면서 자기 방식을 조금씩 고쳐 나가요. 이름이나 사양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방향입니다.
이 도구들은 새로운 걸 발명한 게 아닙니다. 잘 쓰는 사람이 이미 손으로 하던 일 — 잘 된 걸 기억해 두고, 재사용하고, 쓸 때마다 조금씩 고쳐 쌓는 일 — 을 기계가 흉내 내기 시작한 것뿐이에요. 바꿔 말하면, 명령을 밖에 시스템화해 온 사람은 이 흐름의 앞쪽에 이미 서 있었던 셈입니다. 도구가 따라오고 있는 그 방향에요.
4. 그러니 외워야 할 건 도구 이름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에이전트가 새로 나왔다’는 소식에 도구 이름부터 외우라고 권하지 않습니다. 전에 RAG, MCP 같은 약어를 몰라도 AI는 잘 쓴다고 했던 것과 같은 이유예요. 그건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의 ‘엔진룸 언어’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일에 쓰는 사람의 ‘운전석 언어’입니다.
도구에서 가져올 건 그 이름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 잘 된 명령은 흘려보내지 말고 남긴다, 다시 쓸 수 있는 틀로 만든다, 쓸 때마다 조금씩 고쳐 쌓는다. 이 셋이면 충분합니다. 에이전트 도구는 내년이면 또 바뀌고 새 이름이 등장하겠지만, 이 습관은 어떤 도구를 쓰든 그대로 남아요. 막힘을 뚫는 힘이 미리 만들어 둔 작업 구조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5. 오늘의 한 걸음 — 명령 하나를 남기는 것부터
거창하게 시작할 것 없습니다. 오늘 AI에게 시킨 일 중에 결과가 마음에 들었던 명령 하나를 골라, 메모장이든 노트 앱이든 한 곳에 붙여 두세요. 제목은 ‘회의록 정리’처럼 나중에 찾을 수 있게 달아 두고요. 그게 전부입니다.
다음에 같은 일이 오면 0에서 시작하는 대신 그걸 꺼내 조금 고쳐 쓰면 되고, 그렇게 한 달이면 나만의 명령 모음이 생깁니다. 처음엔 메모 몇 줄이지만, 그게 쌓이면 내 일의 출발점 자체가 높아져요.
AI를 잘 쓴다는 건 더 많은 기능을 아는 게 아닙니다. 같은 일을 두 번째 할 때 첫 번째보다 빨라지는 것 — 그 차이를 만드는 건 똑똑한 도구가 아니라, 잘 된 명령을 흘려보내지 않고 쌓아 두는 일하는 방식입니다.
출처
- Hermes Agent (Nous Research) (어려운 문제를 풀면 재사용 가능한 ‘스킬 문서’를 스스로 작성하고 영구 메모리에 쌓아 다음 작업에 활용하는 오픈소스 에이전트, MIT 라이선스)
- Sakana AI — The AI Scientist (이전 아이디어와 피드백을 다음 세대에 반영하는 ‘열린 루프’로 스스로를 개선하는 자율 연구 에이전트)
도구의 사실관계는 위 1차 출처에 근거하며, 해석과 현장 관점은 박상훈의 견해입니다.